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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조은시와글

봄비에관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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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방원조

실바람 아지랭이

몰래 숨기고

언 세상 녹이려고 보슬비 와요

 

소곤소곤 봄 얘기

풀어내리면

고개 내민 새싹은 세수하지요

 

 

 

  봄비              변영로(1898- 1961 ) 서울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아려 -ㅁ 풋이 나는, 지난 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안에 자지러지노나!

아, 찔림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직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보니, 아, 나아가보니 ㅡ

이제는 젖빛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노나!

아, 안올 사람 기두르는 나의 마음!

 

 

 

  봄비         심훈

하나님이 깊은 밤에 피아노를 두드리시네

건반 위에 춤추는 하얀 손은 보이지 않아도

섬돌에, 양철 지붕에, 그 소리만 동당 도드랑

이 밤에 하나님도 답답하셔서

잠 한 숨도 못 이루시네

 

 

 

   봄비           안덕상. 충남 한산.

벌겋게 타오르는 산불 지지 누르려

너는 주룩주룩 쏟아지지만

 

너 달려오는 소리에 놀란 뿌리들

검은 산 빛 깨뜨리고

더 큰 불 지펴 놓고야 말겠다

 

마른 삭정이도 한껏 젖으며

이 밤 자고 나면

불이야, 크게 소리치며

2006년 시와 시학 신춘문예당선작

 

 

   봄비         안도현

봄비는

왕벚나무 가지에 자꾸 입을 갖다댄다

왕벚나무 가지 속에 숨은

꽃망울을 빨아내려고

 

 

 

   봄비         이수복(1924 - 1986) 전남 함평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밭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풀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입 안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봄비          이재무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른다

보라, 젖을 수록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

봄비의 혀가

아직, 잠에 혼곤한

초록을 충동질한다

빗속을 걷는

젊은 여인의 등허리에

허연 김 솟아오른다

 

사랑의 모든 기억을 데리고 강가로 가다오

그리하여 거기 하류의 겸손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게 해다오

살 속에 박힌 추억이 떨고 있다

어떤 개인 날 등 보이며 떠나는 과거의 옷자락이

보일 때까지 봄비여

내 낡은 신발이 남긴 죄의 발자국 지워다오

 

나를 살다간 이여, 그러면 안녕

그대 위해 쓴 눈물 대신 묘목을 심는다

이 나무가 곧게 자라서

세상 속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마다 그리움의

이파리 파랗게 반짝이고

한 가지에서 또 한 가지에로

새들이 넘나들며 울고

벌레들 불러들여 집과 밥을 베풀고

꾸중 들어 저녁밥 거른 아이의 쉼터가 되고

내 생의 사잇길 봄비에 지는 꽃잎으로

봄비는, 이 하염없는 추회

둥근 열매로 익어간다면

나를 떠나간 이여,그러면 그대는 이미

내 안에 돌아와 웃고 있는 것이다

늦도록 봄비 싸돌아 다닌 뒤

내 뜰로 돌아와 내 오랜 기다림의 묘목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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