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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시와 글들.....

조지훈 에 관한 시 와 느낌

 

 

 

기다림 - 조지훈

고운 임 먼 곳에 계시기
내 마음 애련하오나

먼 곳에나마 그리운 이 있어
내 마음 밝아라.

설운 세상에 눈물 많음을
어이 자랑삼으리.

먼 훗날 그때까지 임 오실 때까지
말 없이 웃으며 사오리다.

부질없는 목숨 진흙에 던져
임 오시는 길녘에 피고져라.

높거신 임의 모습 뵈올 양이면
이내 시든다 설울 리야...

어두운 밤하늘에
고운 별아.

 

 

빛을 찾아가는 길 - 조지훈

사슴이랑 이리 함께 산길을 가며
바위 틈에 어리우는 물을 마시면

살아있는 즐거움의 저 언덕에서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해바라기 닮아 가는 내 눈동자는
자운 피어나는 청동의 향로

동해 동녘 바다에 해 떠 오는 아침에
북받치는 설움을 하소하리라.

돌뿌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 보자.

빛을 찾아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 가는 바람이 되라.


고사 - 조지훈

목어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만리길

눈부신 하늘아래
노을이 진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면 - 조지훈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면
나는 아직도 작은 짐승이로다.

人生은 항시 멀리
구름 뒤로 숨고

꿈결에도 아련한
피와 고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괴로운 짐승이로다.

모래밭에 누워서
햇살 쪼이는 꽃조개같이

어두운 무덤을 헤매는 亡靈인 듯
가련한 거이와 같이

언제가 한번은
손들고 몰려오는 물결에 휩싸일

나는 눈물을 배우는 짐승이로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면.


꿈 이야기 - 조지훈

문(門)을 열고
들어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마을이 온통
해바라기 꽃밭이었다.
그 훤출한 줄기마다
맷방석만한 꽃숭어리가 돌고

해바라기 숲 속에선 갑자기
수천 마리의 낮닭이
깃을 치며 울었다.

파아란 바다가 보이는
산 모롱잇길로
꽃 상여가 하나
조용히 흔들리며 가고 있었다.

바다 위엔 작은 배가 한 척 떠 있었다.
오색(五色) 비단으로 돛폭을 달고
뱃머리에는 큰 북이 달려 있었다.

수염 흰 노인이 한 분
그 뱃전에 기대어
피리를 불었다.

꽃상여는 작은 배에 실렸다.
그 배가 떠나자
바다 위에는 갑자기 어둠이 오고
별빛만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문을 닫고 나와서 보면
그것은 문이 아니었다.


女人 - 조지훈

그대의 함함이 빗은 머릿결에는
새빨간 동백이 핀다.

그대의 파르란 옷자락에는
상깃한 풀내음새가 난다.

바람이 부는 것은 그대의 머리칼과
옷고름을 가벼이 날리기 위함이라

그대가 고요히 걸어가는 곳엔
바람도 아리따웁다.


승무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낙화(落花) -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하노니

꽃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풀잎단장 - 조지훈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 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고풍 의상 - 조지훈

하늘로 날을 듯이 깊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반월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와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 당혜
발자취 소리도 없이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
호접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곳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지어이다.


완화삼 - 조지훈
- 목월에게

차운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많음도 병이냥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동야초 - 조지훈

포플라나무 꼭대기에
깨어질 듯 밝은 차운 달을
앞 뒷산이 찌렁찌렁 울리도록 개가 짓는다.

옛이야기처럼 구수한 문풍지 우는 밤에
마귀할미와 범 이야기 듣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던 따슨 아랫목

할머니는 무덤으로 가시고
화로엔 숯불도 없고
아. 다 자란 아기에게 젖줄이도 없어
외로이 돌아앉아 밀감을 깐다.


석문 -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 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난간 열두 층계 위에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 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의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흰 목덜미를 어루만질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을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년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岩穴의 노래 - 조지훈

야위면 야윌수록
살찌는 혼(魂)

별과 달이 부서진
샘물을 마신다.

젊음이 내게 준
서릿발 칼을 맞고

創痍를 어루만지며
내 홀로 쫓겨 왔으나

세상에 남은 보람이
오히려 크기에

풀을 뜯으며
나는 우노라

꿈이여 오늘도
광야를 달리거라

깊은 산골에
잎이 진다.


민들레꽃 - 조지훈

까닭없이 마음 외로울 때면
노오란 민들레 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이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이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 벌써 봄이 기웃거리는 듯한 느낌이다. 지금은 가고 없는 시인 동탁 조지훈의 시 '민들레꽃'을 읽는다. 봄이면 우리들 산하에 지천으로 널려서 피는 민들레꽃. 그 노오란 꽃을 통하여 '못 다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가 바로 '민들레꽃' 일성싶어 오늘따라 왠지 눈시울이 적셔든다. 민들레꽃! 어디선가에서 푸른 바람이 한 자락이라도 불어올라치면 가벼운 씨방을 보듬고 이 산하 어디에나 구별하지 않고 날아가서 뿌리내리는 꽃이기 때문이다. 이 꽃은 심지어는 도시의 시멘트 보도블록 틈새에도 사뿐히 내려서, 봄이면 꼭꼭 그 꽃잎을 노오랗고 예쁘게 펼쳐 보인다. 낯선 뭇 사람들의 발길이 하루도 쉬지 않고 내달리는 도시의 둣골목 거기, 가령 몇 cm의 흙 알맹이만 고여 있어도 그 씨방은 이내 뿌리를 내려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느 시인은 이 땅 한반도를 '민들레 영토'라 했고, 그 꽃을 곧잘 '이 땅의 민중들'에 비교하곤 했으리라. 정녕 누군가에 의해 짓밟힌다손 치더라도, 봄이면 다시 그 작디 작은 흙 알맹이 속에 찬연하게 뿌리를 내려 끝끝내 망울을 터뜨리는 우리 나라의 꽃 민들레! 살아 생전 가뜩이나 이 땅의 서민들 혹은 민중들을 위해 그립고 그리운 노래일랑 부르기를 즐겨했던 시인 조지훈은 그러했길래 이처럼 아름다운 시 '민들레꽃'을 남겼으리라.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까지 멀리 날아 찾아와서, 말없이 웃음짓는 민들레꽃! 시인은 정녕코 그런 모습을 두고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아 얼마나한 위로이랴'라고 스스로 위안과 기쁨을 표시한다. 조지훈 시인은 가고 없어도 그가 남긴 시 '민들레꽃'은 올 봄에도 이 산하 곳곳에 지천으로 널려서 다시 피어날 것이다. - 김준태(시인)


병에게 - 조지훈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 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내게 휴식을 권하고 생의 외경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즉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더운 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 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날의 메아릴 듣는 것일세
생에의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다웁고
지옥의 형별이야 있다손 치드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넨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오랜 벗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러나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말이나 서운한 표정, 서로 뜻이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두고 나를 설복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앞에 경도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떠나가네
잘가게 이 친구
생각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사모 - 조지훈

그대와 마조앉으면
기인 밤도 짧고나

희미한 등불 아래
턱을 고이고

단둘이서 나누는
말 없는 얘기

나의 안에서
다시 나를 안아주는

거룩한 광망
그대 모습은

운명보담 아름답고
크고 밝아라

물들은 나무잎새
달빛에 젖어

비인 뜰에 귀또리와
함께 자는데

푸른 창가에
귀 기울이고

생각나는 사람 있어
밤은 차고나


봉황수(鳳凰愁) - 조지훈

벌레 먹은 두리 기둥, 빛낡은 단청(丹靑), 풍경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상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및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 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마음의 태양 - 조지훈

꽃다이 타오르는 햇살을 항하여
고요히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라.

가시밭길을 넘어 그윽히 웃는 한송이 꽃은
눈물의 이슬을 받아 핀다 하노니
깊고 거룩한 세상을 우러르기에
삼가 육신(肉身)의 괴로움도 달게 받으라.

괴로움에 짐짓 웃을양이면
슬픔도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고난을 사랑하는 이에게만이
마음 나라의 원광(圓光)은 떠오르노라.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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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훈의 모든 것, 아홉권짜리 전집으로 나와 - 조선일보

지훈 조동탁. 청록파 시인 중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우리 문학사뿐 아니라 정신사에서도 굵은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 스스로 전공이라 여긴 것은 민속학과 역사학을 두 기둥으로 하는 한국 문화사. 지조를 목숨처럼 중히 여기는 지사의 전형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1968년에 영면한 그의 면모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전집이 나남 출판에서 최근 출간됐다.
[시] [시의 원리] [문학론] [수필의 미학] [지조론] [한국 민족운동사] [한국 문화사 서설] [한국학 연구]와 번역서 [채근담] 등 9권.
시인, 문학가로서 뿐 아니라 사상가로서, 지조있는 선비로서의 그의 향취를 느끼게 하는 책들이다. 편집위원은 홍일식(고려대) 홍기삼(동국대)최정호(연세대) 최동호 (고려대) 교수 등 9명. 오래 전 절판된 책의 판본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결정본을 내놓은 이들은 {이 전집이 한국 현대 정신사 지도의 완성과 지훈이 걸어온 자취를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1920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지훈은 다섯살 때부터 조부에게 한문을 배웠고, 혜화전문학교와 월정사에서 익힌 불경과 참선을 평생 연구했다. 여기에 조선어학회의 큰사전 원고를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국어학 지식이 보태져서 현대교육만 받은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학문적 바탕을 이룬 것. 그가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한 일송 김동삼의 장례식에 참례한 것이 열입곱살 때. {지조란 것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지조론). 오대산 월정사 외전 강사 시절, 일제가 주지에게 싱가포르 함락을 축하하는 행렬을 강요한다는 말을 듣고 종일 통음하다 피를 토했고, 교수 시절 박정희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 사직서를 지니고 다녀야 했던 그. 그의 일생을 이끈 지조에 대한 믿음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요즘에 와서도 깊이 음미해볼 만하다.

//// 1년여 만에 완성한 시 [승무] ////.

시문학에 대한 생각을 체계화한 [시의 원리]에서 그는 {시란 것은 진실한 생각과 진실한 느낌, 진실한 표현을 통하여 나오는 그 자신의 전인격적 체험에서 스스로 체득할 수 있고, 이와 같이 시를 체득한 시인 생명의 결정인 작품을 통하여서만 그 초상의 작시법을 듣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한다. 그의 시가 어떤 담금질을 통해 나왔는가는 [승무]를 쓴 과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가 승무를 시로 써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열 아홉 살때 가을. 수원 용주사에서 열린 큰 재에서 승무를 보고 나서였다. 그는 {완전한 예술정서에 싸여 승무 속에 용입되느라 재가 파한 다음에도 밤늦게까지 절 뒷마당 감나무 아래 넋을 잃고 서 있었다}고 한다. 시정을 느낄 때면 뜻 모를 선율이 먼저 심금에 와 부딪치는데 그때도 그랬다. 그러나 이듬해 봄까지 한마디 언어, 한 줄의 구상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걸 비로소 종이 위에 올린 것은 다음해 첫여름 미술전람회에서 김은호 화백의 승무도를 보고 나서. 춤을 세밀히 묘사하자니 혼의 흐름이 부족하고, 거기에 치중하면 묘사가 죽는, 그 양면성 사이에서 고민하다 한편의 시로 완성한 것은 다시 몇 달이 흐른 그 해 10월 구왕궁 아악부에서 영상회상을 듣고 나서였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오래앓던 작품을 완성하니 즐겁기도 하지만, 처음 의도에 비해 너무 모자라는 자신의 기법에 서글픔도 느꼈다고 그는 고백한다. 한국 문화사 서설은 그가 우리 민족의 저변에 흐르는 힘이 무엇인가를 탐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자연과 역사, 문화에 바탕해 우리 민족성의 구성 요소를 평화성 격정성 적응성 보수성 수용성 난숙성 등으로 든 그는 {강력한 양면성을 지양하고 조화해야만 발전을 하지, 외곬로만 붙여 놓으면 열성이 된다}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갑신정변(1884년)에서 광복까지 60년간의 한국 근대 민족 운동사를 정리한 [한국 민족운동사]를 통해 그는 백성들에게서 비로소 싹튼 근대적인 민족의식을 탐구하기도 했다.


* 승무(다시 읽는 한국시) - 조선일보(이어령)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우리가 애송하고 있는 조지훈의 [승무]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곧바로 그 시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 가지 정보의 회로속으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얇은 사] [고깔] [박사]와 같은 의상 정보에 관한 것이고, 다음은 [나빌레라]의 비유어에서 보듯이 나비와같은 자연물에 관한 정보, 그리고 마지막에는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그 신체 정보이다. 셰익스피어의 [기저귀]와 [수의]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생의 기호로 사용되고 있는 것처럼, 이 시에서도 의상은 인간의 [미와 진실]을 드러내는 중요한 문화코드로 작용한다. 반복형으로 강조된 [얇은 사]와 [박사]는 우리가 보통때 입고 다니는 [두터운 무명] 옷감의 재질과 대립하는 것이고, [하이얀] 빛깔은 삶의 쾌락을 나타내는 색동옷과 대칭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절제와 정화를 나타낸다. 그래서 그것들은 [남성에 대한 여성] [속에 대한 성] [축제에 대한 제례]의 탈중력상태의 문화코드를 형성한다. 그리고 1연과 2연에 나오는 고깔은 은유와 환유의 각기 다른 비유의 양상을 통해서 [자연코드]와 [신체코드]에 연결된다. 즉 1연의 [나빌레라]는 고깔을 나비에 비유한 것으로, 얇고 하얀 천의 재질이 나비의 나래와 동일시되고 그 형태는 나비의 모양과 결합된 은유이다. 의미만이 아니다. 부드러운 순음과 유음이 겹친 [나빌레라]의 기호표현(어감)은 무엇인가 가볍게 나부끼고 있는 것과 관련된 의태어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1연의 그 비유의 구조가 [고깔은 나비이다]라는 유사성에 의해 이루어진 [은유]인데 비해서, 2연의 그것은 [고깔을 머리에 쓰다]의 근접성으로 구성된 환유이다. 말하자면 왕관이 그것을 쓴 왕을 상징하듯이 [고깔을 쓴 삭발한 머리]는 바로 여승, 승무를 추는 무희를 나타내는 환유적 상징물이다. 뿐만 아니라 신체의 최상부를 가리키는 머리는 당연히 그 최하위에 있는 발과 대립되는 신체어로서 땅에 대한 하늘, 육체에 대한 정신, 쾌락에 대한 금욕, 감정(발산)에 대한 이성(억제)을 나타내는 문화적 코드이다. 더구나 [파르라니 깎은 머리]는 승려라는 신분만이 아니라 금욕적인 탈속의 의지를 강화해 준다. 단순하게 말해서 고깔의 의상코드가 나비의 자연코드와 합쳐진 것이 춤(무)이며, 삭발한 머리의 신체코드와 결합한 것이 불교(승)이다. 그러니까 [의상=자연=신체]의 세 코드가 은유와 환유의 시적 장치를 통해서 하나로 수렴되고 승화된 것이 바로 그 [승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조지훈의 [승무]를 읽는다는 것은 그 첫머리에 제시된 고깔(의상)-나비(자연)-머리(신체)의 관계가 어떻게 선택, 결합되어 진전되어 가는가를 추적하고 밝히는 일이기도 하다.
신체코드로 볼 때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3연에 이르면 [두 볼에 흐르는 빛](얼굴)이 되고, 5-6연에 오면 손과 발의 춤사위로 변한다. 그리고 다시 그 신체코드는 [복사꽃 뺨]과 [까만 눈동자]로 올라가 본래의 머리부분으로 돌아간다. 의상코드 역시 1연의 고깔이 5연에 오면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로 장삼과 외씨버선으로 바뀐다. 그러나 하늘로 비유된 그 긴 장삼과 사뿐히 위로 올린 외씨버선의 모양은 다시 하늘로 상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물론 의상은 신체의 연장이고 또 춤사위와 관련된 것으로 [손-소매-장삼]에서 [발-버선-외씨버선]으로 내려오는 신체기술과 동일해 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볼에 흐르는 빛]처럼 의상의 환유체계로는 나타낼 수 없는 경우에서도 빈 대에서 소리없이 녹아내리는 황촉불로 그 하강의 이미지를 지속시켜 준다. 촛불은 신체를 에워싸고 있는 [빛의 의상]이 된 것이다. 자연코드는 신체와 의상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인접성을 지니고 있지않으면서도 [나비-지는 오동잎과 달빛-별빛]의 순으로 역시 [상승-하강-상승]의 율동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오동잎 잎새마다 지는 달빛]은 두 불에 흐르는 빛과 빈 대위에서 소리 없이 녹아 내리는 황촉의 불빛과 삼중의 동심원을 그리면서 침하해 간다. 신체의 빛, 문화의 빛, 자연의 빛… 이 세 빛은 서로 다른 코드에 속해 있지만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운] 소멸의 빛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리고 그 빛들은 모두가 [먼 하늘 한 개 별빛]을 향해 합장을 한다. 손이 소매가 되고 소매가 장삼으로, 장삼이 하늘로 바뀌어 가듯이 두 볼에 흐르는 빛은 촛불이 되고 그 촛불은 다시 떨어지는 오동잎 이파리마다지는 달빛이 된다. 그러나 외씨버선이 하늘을 향해 위로 솟아오르듯이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지던 두 검은 눈동자는 먼 하늘의 한 개 별빛으로 향한다. 그 별빛은 촛불처럼 녹아 흐르지도 않고 달처럼 기울다가 소멸되지도 않는다. 승무는 이렇게 세사에 시달리는 번뇌와 복사꽃 육체의 들뜬 열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날아오르는 몸짓인 것이다. 그것은 밤과 침묵 속에서 배어 나오는 빛이다.
원래 승무라고 하면 고깔, 장삼과 함께 의례 법고가 나오게 마련인데 웬일인지 조지훈의 시에는 법고를 비롯해 모든 소리가 일절 배제되어 있다. 무성영화를 보듯이 시 전체가 말없이 녹는 황촉불같이 빛과 몸짓에 의해 연출된다. 이 침묵을 깨는 것이 마지막 귀또리의 울음소리이다. 묘사가 설명으로, 즉 발신코드가 수신코드로 바뀌는 순간인 것이다. 승무의 아름다움이나 신비함, 그리고 그 성스러움이 결정체를 이룬 [먼 하늘 한 개 별빛]을 지상으로 가져오고, 그 심연 속의 빛을 소리로 옮기면 승무의 마지막 연에 등장하는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가 될 것이다. 의상, 자연, 신체의 세 코드는 다같이 춤의 발신코드에 속해 있는 것이지만, 귀또리는 그 어느 코드에도 속하지 않는다. 의미론적으로는 나비와 달빛과 같은 자연코드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 기능을 보면 춤과는 직접 관계되지 않는다. 오히려 귀또리는 춤이나 춤을 추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감상하며 묘사하고 있는 시인과 관계된다. 발신코드에서 고깔과 나비, 검은눈동자와 별빛이 하나인 것처럼 수신코드에서는 귀또리-시인이 동격이 되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빛은 너무 멀고 너무 조용해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발밑에서 우는 가냘픈 귀또리소리에 의해서만 어둠에 둘러싸인 그 빛의 감응을 겨우 짐작할 수가 있다. 춤을 굳이 언어로 바꿔놓은 이 시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승무의 진정한 메시지는 한국의 고전미나 불교의 열반을 나타내는 [승무]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의 의미는 그 침묵하는 것들을 귀뚜라미같은 가냘픈 소리로 옮기는데 있다. [누가 춤을 보면서 춤과 춤추는 사람을 또어낼 수 있는가]라는 유명한 말 대로 [승무]의 세계는 번역 불가능한 것이다. 하늘의 별빛을 땅의 귀또리 소리로 옮기는 작업, 그것이 시인 조지훈이 평생을 두고 썼던 그 시의 의미였을는지도 모른다.


* 지훈의 헌걸찬 문체 갈무리 - 시사저널

지조론·문학론·수필 등 <조지훈 전집> 9권… 박대통령 비판론 등 보완

지훈 조동탁(1920∼1968) 전집이 나남출판사에서 나왔다.제1권 <시>와 제9권 <채근담> 사이에는 문학론과 지조론, 한국민족운동사와 한국문화 및 한국학 연구, 그리고 수필이 들어차 있다. 홍일식·홍기삼·최정호·최동호·인권환 교수 등 9명으로 구성된 <조지훈전집> 편집위원은 서문에 '문학사에서 지훈의 평가가 나날이 높아가는 것을 지켜보며 기뻐해 마지 않으면서도, 아직도 한국 근대정신사에서 마땅히 마련되어야할 지훈의 위치는 그 자리를 바로 찾지 못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걱정이 없지 않다'라고 밝혔다.한국 현대정신사의 지도를 그릴 때 조지훈은 반드시 참조해야 할 '밑그림'이라는 것이다. 일반 독자들에게 조지훈은 청록파에 참여했던 시인으로 먼저, 그리고 널리 알려져 있다. 시 <승무>에서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라고 노래한 섬세한 감수성과, <지조론> 혹은 <한국민족운동사>사이는 너무 멀어보인다.그러나 지훈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면 시인의 길과 선비의 길은 두 갈래가 아니었다.
지훈은 소월과 영랑에서 발원한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잇는 한편, 황현과 한용운으로 흐르는 지사의 길을 또한 받아들였다. 경북 영양에서 태어난 지훈은 유년기에 조부 조인석과 부친 조헌영으로부터 한학과 절의(節義)를 배워 육화했고, 혜화전문과 월정사에서 익힌 불경과 참선을 평생 탐구했다. 그리고 조선어학회의 <큰사전> 원고를 정리하면서 국어학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했으니, 그의 학문적 부피는 광복 이후 현대 교육만 받은 이들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우리만큼 넓고 깊었다. '여름에 아이스 케이크 장사를 하다가 가을 바람만 불면 단팥죽 장사로 간판을 남 먼저 바꾸는 것을 누가 욕하겠는가'라는 그의 글 <선비의 도>는 36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추상과 같은 질책이 쩌렁쩌렁하다. 65년 박정희 대통령의 진해 발언을 비판했다가 정치 교수로 몰린 이후 늘 사직서를 지니고 다녔던 그는 지조와 절개, 여유와 소탈함으로 현대의 선비로 추앙되었다. 조지훈의 신념이 우익적이었다 해도 그 우익은 아름답다. 거칠 것 없이 당당했기 때문이다.특히 8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당당한 우익을 만나볼 수 없었다. 당당한 우익은커녕, 하루아침에 지조와 절개를 내팽개친 '좌익'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그런데 지금 한국 지식인 사회는 좌든 우든 아예 날개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조지훈 전집>은 더욱 커 보인다. 이번 전집은 73년 일지사에서 나왔다가 절판된 것을 되살린 것인데, 한시초(漢詩抄)와 박대통령 진해 발언을 비판한 신문 기고 등을 새로 보완했다. 지훈의 헌걸찬 문체(요즘 모국어가 잃어버린)는 전집 9권 <채근담>맨 뒤에 실린 보조국사 지눌의 <목우자 수심결> 번역에서 새삼 돌올하다.

 
 
* 조지훈

1920년 경북 영양 출생,
혜화전문과 졸업.
문장지의 추천으로 1940년 데뷔. 세칭 청록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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