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뮤직비디오

임종환 그냥걸었어

 

그냥 걸었어


(여보세요)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오고 해서

오랫만에 빗속을 걸으니 옛생각도 나데
울적해 노래도 불렀어 저절로 눈물이 흐르데
너도 내모습을 보았다면 바보라고 했을거야
(전화 왜했어)
정말이야 처음엔 그냥 걸었어
비도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냐
(거기 어디야)
미안해 너희 집앞이야
난 너를 사랑해
우우우 우우 우우
(다리 아프겠다)
(비 많이 맞았어)
우우
(옷 다 젖었지)
우우
나 그냥갈까
워 워 워워 워

 
어쩌면 비에 대해 가장 잘 묘사한 노래가 아닐까.
 
그런 때가 있었다. 비가 오면 무작정 걸었다. 우산도 쓰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대고 그냥 맞았다. 앉은 자리가 흥건히 젖도록 맞으며 오히려 비를 맞으려 길을 걸었다.
 
왜였을까? 이유는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이었다. 딱히 다른 이유 없이 목적도 없이 그냥 걷는 것이었다. 있다면 하나, 비를 맞는 것.
 
비를 맞고 있으면 뭔 생각이 그리 많이 나는지. 비가 내리고 몸은 젖고, 몸이 젖으니 마음도 젖고, 마음이 젖으니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고, 저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기억들마저 하나둘 새록새록 떠오른다. 잊고 있던, 잊으려 했던, 잊고 싶었던,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그 기억들이...
 
그래서 때로 비가 내리는 날이면 흠뻑 젖은 채로 술을 마시곤 했었다. 후끈하게 오르는 알콜의 기운을 빌어 눅눅한 마음을 말려보고자. 그러나 대개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을 뿐이다.
 
이경규가 그랬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솔직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심각해질 일도 아닌데 당시는 뭐가 그리 심각했던지. 하나하나가 심각했고 하나하나가 진지했다. 울고 웃고 화내고 원망하며 그렇게 달구어지고 달아오르곤 했었다. 하긴 어린 때니까.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음도 가라앉는다. 마음이 가라앉으니 당연히 몸도 활력을 잃는다. 휴식기간이다. 몸도 마음도 쉬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잊혀졌던 것들이, 애써 묻어두었던 것들이 그 빈틈을 타고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것이리라.
 
나는 노래의 화자의 말에 십분 동의한다. 맞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걸었을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걸었을 것이다. 어쩐지 우울해지고, 어쩐지 센치해지고, 눈물도 나고, 노래도 나오고... 그렇게 걷다 보니 문득 그녀의 집앞이다.
 
사랑하는 사이일까? 그러나 사랑하는 사이라면 전화를 왜 했느냐 되묻지는 않을 것이다. 되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상냥하며 무심하다. 간만에 기껏 용기내어 전화를 했더니만 전화를 왜 했느냐 할 때의 심정이란 어떠할까.
 
그래서일 것이다. 굳이 비오는 날 그녀의 집앞으로 발길이 향한 것은. 비의 힘을 빌었을까? 그건 용기도 뭣도 아니다. 비로 인해 마음이 풀어진 사이 애써 묻어두었던 어떤 감정이 발길을 그리로 향하게 했을 뿐이다.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냐. 미안해. 너의 집앞이야."
 
이 얼마나 비굴한가. 그게 싫었을 것이다. 상냥하여 더욱 가슴이 에이는. 친절하여 더 서럽고 시린. 그녀는 그리 상냥하고 친절하다. 그러나 결코 그 이상은 허락지 않는다. 아니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고백하기에는 젊은 순수란 너무도 여리고 수줍고 비겁하다.
 
사랑한다는 말도 들으리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전화기의 여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하고 친절하다. 놀람도 없고 당황함도 없고 반가움도 없다.
 
하긴 그러니 저리 장황하게 떠들고 있는 것일 게다. 속마음을 감추고자. 감추어두었던 속마음을 그녀에게 들키지 않고자. 진정으로 하고 싶은 그 말이 그녀에게 들리지 않도록.
 
"나 그냥 갈까?"
 
붙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저리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같은 순수한 비겁함일 것이다.
 
어쩐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표현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는 말이다. 너무 좋아해서 그래서 오히려 말하지 못하는... 비가 오면 어쩐지 비를 맞고 싶어지는 아마 비슷한 무렵일 것이다. 괜히 심각해지고, 괜히 진지해지고, 괜히 무거워지는 그런...
 
돌이켜 보면 과연 그랬을까 싶은 한심한 시절이지만... 지금과도 또 다르다. 그런 시절도 있었더라.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잊혀진 기억이기도 하리라.
 
 
뉴스에 임종환이 갔다고 한다. 직장암이라던가? 마지막 뉴스가 임종환이 외국에 머물다 돌아와서 새로이 음악활동을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원래 그가 추구하던 음악은 "그냥 걸었어"가 아니었고, 이제 비로소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꽤 된 것 같지만 그런데 이렇게...
 
그때가 언제일까?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이 돌풍을 일으키고, 부활의 "사랑할수록"이 미친 듯 들려올 때 한 귀퉁이에서는 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칵테일 사랑의 상큼함이나 사랑할수록의 유장함과는 또 다른 어떤 유치함... 그러나 어쩐지 공감이 가는 유치함이었다. 유치란 원래 순수다.
 
그림처럼 그려지던 음악이었다. 한 편의 콩트를 보는 듯 이야기가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나 역시 비를 맞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래서 한때 많이도 부르던 노래였는데.
 
올해 겨우 마흔여섯. 한참 남은 나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누구도 모르는 것이라.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가고 단지 기억만 남는 모양이다. 이름과 그리고 그가 이루었던 것들과.
 
가신 이의 명복을 빌며...
 
그나저나 "그냥 걸었어" 음원은 왜 다음에 없는 것일까? 배경음악으로 깔려 해도 음원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은 아니다만.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방문자 가운데 임종환을 기억할 수 있는 나이대에서나 해당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벌써 꺾였다. 임종환을 알고 그의 노래를 이해할 수 있는 세대란. 시간은 이렇게나 흘러버렸다.
 
새삼 이런 일로 시간의 흐름을 깨닫는다. 내가 이 만큼이나 와 있다는 것도.
 
임종환과의 짧은 기억들을 추억해 본다.

'국내뮤직비디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미 미안해 사랑해서  (0) 2010.07.30
블랙펄 의 고고씽  (0) 2010.07.30
이정현 수상한남자  (0) 2010.05.16
린 자기야 여보야 사랑아  (0) 2010.05.15
바이브 다시와주라  (0) 2010.05.15